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저격 사건을 소재로 삼아 개봉 13일 만에 241만 명을 모으는 동안 역사왜곡 논란과 상영 중단 요구에 휘말렸다. 이 소음은 역사 해석 비판, 창작 자유 반론, 배우를 겨냥한 집회라는 성격이 다른 세 문제가 뒤섞인 것이다. 기사를 읽을 때는 확인 가능한 사실과 해석상의 주장, 그리고 개인 신변을 향한 행위를 나눠 봐야 한다.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소음은 사실 성격이 다른 세 가지가 뒤섞여 있다. 영화의 역사 해석을 문제 삼는 비판, 그 비판을 검열로 보는 반론, 그리고 배우와 제작진을 향한 집회와 비방이다. 뉴스가 이 셋을 한 덩어리로 전하다 보니 쟁점이 흐려진다.
영화는 1974년 8월 15일 사건, 곧 문세광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저격하려다 육영수 여사가 피격돼 숨진 사건을 소재로 삼는다. 허진호 감독은 중앙정보부 '윗선'이 배후일 가능성을 암시하되 결말을 열어뒀다. 9월 23일 개봉해 10월 5일까지 241만 명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는 동안, 상영 중단 요구와 고발, 집회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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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은 역사 왜곡을 걱정한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과 국민의힘은 "배후를 명시하지 않았을 뿐, 단서와 인물 배치가 정권 개입을 가리킨다"며 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록에 근거한 것처럼 묘사했다고 본다. 이들은 상영 중단을 요구하고 제작진을 경찰에 고발했다.
다른 한쪽은 창작의 자유를 든다. 제작진은 "실제 사건에 상상력을 더한 극영화"라는 입장이고, 허진호 감독은 여러 가설을 확정할 수 없어 열린 결말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영화는 영화인에게 맡겨야 한다"고 했다.
두 주장은 층위가 다르다. 앞쪽은 '이 묘사가 특정인의 명예를 구체적으로 훼손하느냐'를 따지고, 뒤쪽은 '허구를 허구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느냐'를 따진다. 그래서 "왜곡이다"와 "자유다"는 정면으로 맞부딪치기보다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하고 있는 셈이다.
10월 4일 신자유연대 등은 주연 배우 유해진의 서울 성북구 자택과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 사옥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경찰 추산 약 50명이 모였고, 온라인에서는 비방과 허위사실 유포, 불매운동이 번졌다.
이 대목은 영화 해석 논쟁과 분리해 봐야 한다. 작품 내용을 비판하는 것과, 출연자의 집 앞을 찾아가 신변을 위협하는 것은 다른 행위다. 전자는 표현의 영역이지만 후자는 협박이나 명예훼손 같은 법적 문제로 넘어간다. 10월 5일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경찰청 등에 엄정한 법 집행을 요청하며 "창작자에 대한 신변 위협은 민주주의의 파괴"라고 한 것도 이 지점을 겨냥한다.
역사 소재 작품의 다툼은 처음이 아니다. 법원은 대체로 공인을 다룬 표현에 폭넓은 자유를 인정해 왔다.
영화 '실미도'에서 대법원은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하면서 세부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을 인정하면 표현·창작의 자유가 크게 위축된다"며 유족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드라마 '서울 1945'도 2010년 무죄가 확정됐는데, 특정 장면만으로 구체적 허위사실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다만 선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05년 '그때 그 사람들'에서 법원은 상영 자체는 허용하면서도, 실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장면 약 3분 50초를 삭제하라고 했다. 허구가 아니라 실제라는 인식을 심어 고인의 인격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요약하면, 관객이 '극'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으면 폭넓게 허용하되, '사실'로 믿게 만드는 장면에는 제동을 건다.
같은 논란 기사라도 다음을 나눠 읽으면 흔들리지 않는다.
'암살자(들)'의 상영 중단 소송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판례 흐름을 보면 상영 전면 금지보다 일부 장면을 둘러싼 다툼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이는 전망일 뿐 확정이 아니다. 기사에서 '왜곡' '검열' 같은 단어가 나오면, 그 말이 영화 해석을 가리키는지 개인을 향한 공격을 가리키는지부터 구분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