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를 두고 역사 왜곡 주장과 창작·안전 논란이 동시에 번지고 있다. 이 논란은 정치권의 주장, 감독·영화사의 입장, 1974년 육영수 피격 사건의 확정된 기록이 뒤섞여 있어 그대로 읽으면 판단이 흐려진다. 무엇이 주장이고 무엇이 확정된 사실인지 나눈 뒤 영화가 의혹을 사실로 단정하는지 질문으로 남기는지 확인하면 관람 여부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를 두고 벌어진 논란은 세 가지가 뒤섞여 있다. 정치권이 내놓은 "역사 왜곡" 주장, 감독과 영화사가 밝힌 창작 의도, 그리고 1974년에 실제로 벌어진 사건의 확인된 기록이다. 이 셋은 층위가 다르다.
논란 기사만 보면 "왜곡이냐 아니냐" 한 줄 싸움처럼 보인다. 하지만 볼지 말지 판단하려면 누가 무엇을 주장하는지, 그중 무엇이 사실로 확정된 것인지 나눠서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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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들)'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벌어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모티브로 한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유해진·박해일·이민호가 주연을 맡았고 지난 9월 23일 개봉했다.
핵심은 영화가 공식 기록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시 조사당국은 재일교포 문세광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지었는데, 영화는 행방이 확인되지 않은 탄환과 사라진 음향 증거 같은 오래된 의문을 파고든다. 허진호 감독은 개봉 전후 인터뷰에서 "결론을 내리는 영화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즉 영화는 답을 제시하는 형식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형식이다.
사건 자체의 기록은 분명하다. 1974년 8월 15일 오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 도중 문세광이 권총을 발사했다. 표적은 연설 중이던 박정희 대통령이었지만 총탄은 단상에 있던 육영수 여사의 머리에 명중했고, 여사는 그날 오후 7시 49세로 숨졌다. 식장에 있던 여학생 장봉화 양도 희생됐다.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됐고, 조사당국은 조총련과 북한을 배후로 지목했다.
여기까지는 공식 기록으로 확정된 사실이다. 영화가 건드리는 '의혹'은 이 확정된 기록에 대한 의문이지, 그 자체로 검증된 새 사실은 아니다. 영화도 그 의혹이 맞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논란의 한쪽은 정치적 주장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10월 5일 충북 옥천 육영수 여사 생가를 찾아 영화를 비판했다. 장동혁 대표는 "예술적 상상력은 사실이 비어 있는 곳을 채우기 위한 것이지만 분명한 역사적 사실 앞에서는 멈춰 서야 한다"고 말했고, 박덕흠 국회부의장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실제 역사처럼 묘사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쪽은 창작과 안전을 둘러싼 쟁점이다. 10월 4일 서울 성북구 유해진 자택 앞에서 보수 성향 단체의 집회가 열렸고, 온라인에서는 배우를 향한 비방과 허위 사실이 번졌다. 문화체육관광부 최휘영 장관은 10월 5일 "창작자에 대한 신변 위협은 민주주의의 파괴"라고 밝혔고, 유해진 소속사는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는 "정치가 참전할 곳은 민생"이라며 정치권의 개입을 비판했다.
정리하면 '역사 왜곡' 주장은 평가의 영역이고, 피격 사건의 기록은 사실의 영역이며, 배우 신변위협은 그와 별개의 안전 문제다. 섞어 읽으면 판단이 흐려진다.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는 대부분 '기록 + 상상'의 조합이다. 확정된 사실은 뼈대로 쓰고, 기록이 비어 있는 동기·대화·내면은 연출로 채운다. 문제는 관객이 그 경계를 알기 어렵다는 데 있다.
그래서 판단의 기준은 "허구가 있느냐"가 아니라 "그 영화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가깝다. 확정된 기록을 뒤집는 주장을 사실처럼 못 박는지, 아니면 어디까지나 질문으로 열어두는지가 다르다.
영화를 볼지 말지는 결국 취향과 관점의 문제다. 다만 그 결정을 논란의 소음이 아니라 사실과 주장을 구분한 자기 기준 위에서 내리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