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가 8월 5일 개봉해 6일 만에 200만 관객을 넘기며 원작 오디세이아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졌다. 원작은 소설이 아니라 24권짜리 고대 그리스 서사시이고, 영화는 비선형 구조를 시간 순서로 바꾸고 트라우마와 죄책감을 전면에 세운 각색으로 평가된다. 처음 읽는다면 그리스어 원전 완역인지, 가독성과 원전 충실성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뒀는지를 기준으로 번역본을 고르면 된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가 8월 5일 개봉해 6일 만에 관객 200만 명을 넘었다. 맷 데이먼이 오디세우스를, 톰 홀랜드와 앤 해서웨이, 로버트 패틴슨 등이 함께한 이 작품은 전편을 아이맥스 필름 카메라로 찍은 최초의 극장 개봉작이라는 점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러닝타임은 170분대다.
영화가 끝나고 원작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그런데 서점에서 마주치는 '오디세이아'는 기대와 조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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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근대 소설이 아니라 약 2800년 전에 지어진 고대 그리스 서사시다. '일리아스'의 후속편 격으로, 모두 24권으로 이뤄져 있고 원래는 낭송을 위한 운문이었다. 줄글 소설처럼 술술 읽히길 기대하면 초반에 당황할 수 있다.
구조도 영화와 다르다. 원작은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장면에서 출발하고, 정작 괴물과 마녀가 나오는 모험담은 오디세우스가 한참 뒤에 남의 궁정에서 회상으로 들려주는 방식이다. 시간 순서가 뒤섞인 셈이다.
보도에 따르면 놀란은 이 회상 구조를 걷어내고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펼쳤다고 한다. 원작이 강조한 오디세우스의 '꾀 많음', 즉 거짓말과 계략보다 전쟁이 남긴 트라우마와 죄책감을 전면에 세웠다는 평이 많다. 원작을 그대로 옮긴 영화가 아니라, 같은 뼈대에서 다른 질문을 던지는 각색으로 보는 편이 맞다.
큰 줄기는 단순하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려 하지만, 신의 노여움과 온갖 사건에 휘말려 10년을 헤맨다. 특히 외눈 거인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른 일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미움을 사면서 귀향길이 거듭 어긋난다. 사람을 짐승으로 바꾸는 마녀 키르케, 그를 붙잡아 두는 님프 칼립소, 노래로 뱃사람을 홀리는 세이렌도 이 여정에 등장한다. 그사이 이타카에서는 아내 페넬로페가 남편이 죽었다고 믿는 구혼자들에게 시달리고,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기다린다. 결국 정체를 숨긴 채 돌아온 오디세우스가 이들과 맞서는 것으로 이야기는 매듭지어진다. 부하를 모두 잃고 홀로 살아 돌아온다는 점이, 영화가 죄책감에 주목한 배경이기도 하다.
번역본이 여럿이라 무엇부터 펼지 망설이게 된다. 세 가지만 보면 된다.
첫째, 그리스어 원전을 직접 옮겼는지 확인한다. 영어판을 다시 우리말로 옮긴 중역본보다 원전 완역본이 원래의 결에 가깝다.
둘째, 가독성과 원전 충실성 중 어디에 무게를 뒀는지 본다. 널리 읽히는 천병희 번역은 매끄럽게 읽히도록 다듬은 쪽이고, 이준석·김기영 번역 등은 원문의 낯선 표현까지 최대한 살리는 쪽이다. 예컨대 원문의 관용구를 천병희는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풀고, 이준석은 '날개 돋친 말'처럼 직역에 가깝게 옮긴다.
셋째, 주석과 해설의 양이다. 고유명사와 신화 배경이 많은 작품이라, 각주가 친절한 판본이 첫 독서에는 덜 지친다.
정리하면 처음이라면 가독성을 앞세운 판본으로 완주한 뒤, 원문의 맛이 궁금해지면 충실성을 앞세운 판본으로 다시 읽는 순서가 무난하다. 영화의 여운을 원작으로 이어가기에는 그 편이 덜 부담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