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요태 빽가가 8월 1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외증조부가 임시정부를 도운 독립운동가 진희창 선생이라고 처음 밝혔다. 20년 넘게 활동하며 멤버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것은, 외증조부의 업적에 '얹혀간다'는 부담 때문이었다. 이번 공개는 어려운 독립운동가 후손을 돕겠다는 뜻에서 나왔고, 진희창 선생은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은 인물이다.
빽가는 20년 넘게 활동해 온 그룹 코요태의 멤버다. 그런 그가 광복절을 맞아 꺼낸 이야기는 무대 밖 집안 내력이었다.
빽가가 밝힌 외증조부는 경림 진희창 선생이다. 무대 위 인물이 아니라, 상하이에서 임시정부의 살림을 떠받친 쪽에 가깝다.
진 선생은 1920년 상하이에서 교민들의 자치 조직인 대한인거류민단 설립에 참여해 의사원으로 일했다. 국명을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민주공화제 임시헌법을 제정하던 임시의정원 회의에도 이름을 올렸다. 겉으로는 상하이 전차회사 감독이라는 직업을 유지하면서, 그 자리를 독립투사들의 안식처와 자금줄로 썼다.
백범 김구의 '백범일지'에도 그의 이름이 나온다. 김구는 진희창처럼 가까운 동지들이 자신을 부담 주지 않고 도왔다고 적었다. 상하이 임시정부가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렸다는 점을 떠올리면, 자금과 거처를 대던 이런 조력자의 역할이 왜 중요했는지가 분명해진다. 무기를 든 투쟁만이 독립운동의 전부는 아니었던 셈이다.
진 선생은 광복을 보지 못한 채 1933년 2월 상하이에서 순국했고, 정부는 1980년 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순국한 지 47년, 광복 이후로는 35년이 지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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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인 대목은 빽가가 이 사실을 오래 감춰 왔다는 점이다. 코요태로 20년 넘게 활동하는 동안 함께한 멤버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유는 자랑을 미룬 겸손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빽가는 "외증조부님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분의 업적에 혹시라도 얹혀가는 느낌이 들까 봐 굉장히 조심스러웠다"고 설명했다. 조상의 헌신이 "너무나도 크고 무거웠기" 때문에, 그 이름을 자신의 이력처럼 꺼내는 일이 부담스러웠다는 뜻이다.
연예인의 집안 내력은 종종 화제성으로 소비되기 쉽다. 유명인의 조상이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곧바로 미담으로 포장되고, 정작 그 인물의 실제 행적은 뒤로 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빽가가 오래 침묵을 택했던 배경에는, 자신의 이름이 그런 방식으로 외증조부의 공적 앞에 놓이는 것을 경계한 사정이 읽힌다.
그렇다면 왜 지금 입을 열었을까. 빽가는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춰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계기는 자기 자랑이 아니라 다른 후손들을 향해 있었다.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돕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이제는 그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여력이 생긴 지금이, 외증조부의 이름을 꺼내도 될 시점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정리하면 이번 공개는 광복절이라는 날짜와, 후손 지원이라는 목적이 맞물린 결과다. 화제성을 노린 폭로가 아니라, 오래 미뤄 둔 이야기를 도움을 실천할 수 있는 때에 맞춰 꺼낸 쪽에 가깝다.
독립운동가 후손 상당수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다는 점은 광복절마다 되풀이되는 이야기다. 빽가의 언급이 실제로 어떤 지원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진희창 선생의 이력이 이미 1980년 서훈으로 공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라는 점은 이 고백의 무게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