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는 8월 13~14일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행적이 명백하다며 대정친목회 평의원 참여 등 단체 활동을 근거로 들었다. 방어 논리였던 '친일인명사전 미수록'에 대해서는 선정 기준 미달로 보류된 것일 뿐 면죄부가 아니라고 반박하면서도, 활동의 적극성과 반복성은 떨어진다고 함께 인정했다. 연구소가 후손 연좌제식 비난은 경계하며 논란의 본질을 개인 단죄가 아닌 역사 인식·성찰의 문제로 규정했다는 점이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

민족문제연구소는 8월 13일과 14일에 걸쳐,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1872~1927)의 친일 행적이 "명백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판단의 축은 그가 이름을 올린 단체들이다.
핵심으로 지목한 것은 대정친목회다. 연구소는 이 단체를 이완용·민영휘 등 대표적 친일 인사를 중심으로 일제의 '내선융화'를 표방하며 만든 친일 단체로 규정하고, 안상호가 그 평의원으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사무처장 방학진씨는 라디오에서 다른 이력도 함께 들었다.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뒤 경성에서 열린 이토 추모 행사의 준비위원회 명단에 안상호의 이름이 올라 있었고, 총독 자문기구인 경성부협의회와 내선융화 목적의 동민회에도 참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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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논란에서 방어 논리로 쓰인 것이 "친일인명사전에 없으니 친일파가 아니다"라는 주장이었다. 연구소는 이 지점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설명의 요지는 이렇다. 안상호는 사전 발간 당시 선정 기준에 미치지 못해 수록이 보류됐을 뿐, 행적 자체가 없어서 빠진 게 아니라는 것이다. 연구소는 "미수록이 곧 친일 행적이 없음을 뜻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동시에 연구소는 안상호의 활동이 "적극성과 반복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인정했다. 사전에 오르지 않은 이유를 스스로 설명하면서, 친일은 확인되지만 그 강도는 최상위급은 아니라는 결을 함께 남긴 셈이다.
논란 초기부터 알려진 사실은 크게 세 가지였다. 하영이 8월 7일 방송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을 언급한 것, 그 증조부가 대한제국기 서양의학을 익힌 안상호라는 것, 그리고 온라인에서 친일 의혹이 제기됐다는 것이다.
이번 입장으로 새로 정리된 부분은 의혹의 실체다. 연구소가 대정친목회 참여 등을 구체적 근거로 제시하면서, '의혹' 수준이던 이야기가 특정 단체 활동이라는 확인된 사실로 바뀌었다. 사전 미수록의 의미도 '무혐의'가 아니라 '기준 미달 보류'로 다시 규정됐다.
반대 방향의 목소리도 있다. 역사학자 심용환씨는 안상호가 대정친목회에 참여하고 일제의 동화 정책 선전에 가정이 이용된 점은 비판적으로 봤다. 다만 구체적 부역 행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단체 가입 사실만으로 개인을 곧장 '친일파'로 못 박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연구소의 '명백하다'와 심용환의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르게 본다기보다, 같은 단체 활동을 어느 무게로 평가하느냐의 차이에 가깝다.
연구소의 입장은 논란의 무게중심을 옮겼다. '사전에 없으니 아니다'라는 반박이 힘을 잃으면서, 안상호의 친일 행적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려워졌다.
다만 연구소가 겨눈 지점은 후손 개인이 아니었다. 연구소는 후손을 향한 연좌제식 비난은 경계한다고 밝히면서, 논란의 본질을 조상의 이력에 대한 최소한의 역사적 성찰 없이 발언한 '역사 인식과 성찰의 부재'로 규정했다. 하영에게 요구한 것도 처벌이 아니라 "겸허한 반성"이었다.
정리하면 앞으로의 초점은 안상호가 친일이냐 아니냐보다, 후손이 가족사를 어떻게 다루느냐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하영 본인은 이미 자료를 찾아보다 증조부의 행적을 알게 됐다며 가볍게 언급한 것을 반성한다고 밝힌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