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가 1916년 친일단체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올라 있었던 사실이 소속사를 통해 확인됐다. 안상호는 한국인 첫 일본 의사 면허 취득자이자 고종·순종의 진료를 맡은 인물이라, '4대째 의사 집안'을 소개한 방송 발언이 오히려 가문의 식민지기 행적을 소환했다. 대정친목회 가입이 곧 친일이냐를 두고 학계 평가가 갈리는 만큼, 단체의 성격과 개인의 구체적 행적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배우 하영은 2026년 8월 7일 KBS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가족사를 꺼냈다. 증조부가 양의학을 일본에서 배워 한국에 개원한 첫 의사였고, 할아버지와 아버지, 언니까지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내용이었다. 방송 뒤 그 증조부가 안상호로 특정되면서 이야기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처음 소속사는 친일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8월 11일, 안상호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실제로 올라 있다는 기록을 확인하며 입장을 번복했다. 하영은 자필 사과문에서 관련 자료를 직접 찾아보는 과정에서 증조부의 친일적 행적을 알게 됐고 검증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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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1872~1927)는 1902년 일본 도쿄 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인으로는 처음 일본 의사 면허를 딴 인물이다. 서양 의학을 정식으로 배운 초기 세대라는 점에서 의학사에서 자주 언급된다.
그는 전의 촉탁으로 고종의 건강을 돌봤고, 촉탁의로 순종의 진료에도 관여했다. 황실과 닿아 있던 이력은 그를 당대 손꼽히는 유력 인사로 만들었다. 하영이 방송에서 강조한 '한국 첫 개원 의사'라는 표현은 이 이력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같은 위치가 식민지기 그의 사회 활동과 맞물려 있었다는 점이다.
대정친목회는 1916년 11월 결성된 친일 성격의 실업·사교 단체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총재를 지낸 민영기가 회장을 맡았고, 경성의 경제인과 관료, 언론인, 교육자, 법조인, 의료인 등 각계 유력자가 참여했다.
설립 목적은 일본인과 조선인의 '융화', 이른바 내선융화를 내세운 데 있었다. 일제 무단통치기에 영향력 있는 조선인을 끌어들여 식민통치에 협조하도록 만든 조직이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안상호는 결성 당시 윤치호, 유병필 등과 함께 평의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가입 기록 자체는 단순한 명단 한 줄이다. 그런데도 파장이 커진 건, 하영이 먼저 증조부를 자랑스러운 가문의 뿌리로 소개했기 때문이다. 미화된 서사가 나온 직후 친일단체 참여 기록이 드러나면서 대비가 선명해졌다.
역사학계의 평가는 갈린다.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은 대정친목회가 내선융화를 위해 만들어진 단체인 만큼 평의원으로 참여했다면 친일 행위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심용환 역사학자는 비판적 평가는 마땅하되, 구체적 부역 행위에 대한 뚜렷한 근거 없이 특정 단체 가입만으로 '친일파'라 규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 명단에 안상호는 포함돼 있지 않다. 단체의 성격과 개인의 구체적 행적은 구분해서 볼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그 시대엔 다 그랬다'는 옹호도 나온다. 하지만 경향신문은 같은 시기 의사이면서 독립운동에 나선 인물들을 함께 소환하며, 시대적 제약이 곧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고 짚었다. 결국 이번 논란의 도화선이 가족사 미화였던 만큼, 사실 확인 없이 조상을 홍보한 태도 자체가 비판의 초점이 됐다는 점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