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하얀거탑' '밀회'를 연출한 안판석 감독이 2026년 8월 12일 향년 64세로 별세했다. 그는 30여 년간 중산층과 상류층의 위선을 사실적 미장센으로 파고들며 웰메이드와 멜로를 오갔고, 평단과 시청자 모두의 신뢰를 얻었다. 김희애·김명민 등 함께 작업한 배우들의 추모가 그 연출의 성격을 다시 확인시킨다.
안판석 감독이 2026년 8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1961년생으로 향년 64세, 지난해 폐암 진단을 받고 치료하던 중 뇌출혈이 겹쳤다. 일부 매체는 향년 65세로 전했다.
세종대 영문과를 나와 1987년 MBC 드라마국 PD로 입사했고, 1994년 베스트극장 '사랑의 인사'로 연출에 데뷔했다. 이후 30여 년간 남긴 작품은 '하얀거탑'부터 10월 공개 예정인 유작 '연애박사'까지 이어진다. 그를 두고 '드라마 거장'이라는 표현이 여러 매체에서 함께 나온 이유는 특정 흥행작 하나가 아니라, 장르를 옮겨 다니면서도 흔들리지 않은 시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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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으로 그의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은 2007년 '하얀거탑'이다. 대학병원 외과 과장 자리를 둘러싼 권력 다툼을 다룬 이 드라마는 메디컬 스릴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국내 드라마가 멜로와 가족극에 몰려 있던 흐름에서, 인물의 야망과 조직의 논리를 밀도 있게 그려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말을 유행시킨 전환점이 됐다. 주인공을 선악으로 재단하지 않고 욕망 자체를 관찰 대상으로 둔 시선은, 이후 그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방식이 됐다.
안 감독의 색이 가장 또렷했던 시기는 2010년대 중반이다. '아내의 자격'(2012)은 강남 사교육 경쟁과 중산층 가족이 무너지는 지점을 파고들었고, '밀회'(2014)는 예술계 상류층의 허위의식과 비리를 날카로운 블랙코미디로 꼬집었다. 이어진 '풍문으로 들었소'(2015)까지, 그는 겉으로 멀쩡한 계층의 위선을 반복해 들여다봤다.
세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자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관찰이다. 인물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말을 고르는 장면에 오래 머무는 사실적 미장센이, 대사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게 했다.
후반기의 그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와 '봄밤'(2019)으로 멜로에 무게를 옮겼고 '멜로의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다만 장르만 바뀌었을 뿐 방식은 같았다. 감정을 설명하는 대신 일상의 온도와 정적을 그대로 담아, 연애 감정선을 과장 없이 쌓아 올렸다. 사교육을 다시 소재로 삼은 '졸업'(2024), 기업 인수·합병을 다룬 '협상의 기술'(2025)까지 그는 세상을 관찰하는 자세를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다.
별세 소식 뒤 이어진 추모는 그의 연출을 대신 설명한다. '밀회' '아내의 자격' '봄밤'을 함께한 김희애는 자신의 연기를 인정해준 감독에게 감사와 존경을 전했다. '밀회'의 김혜은은 함께 작업한 것을 영광이라 부르며 "너무나 아까워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고, '하얀거탑'의 김명민은 "위대한 연출가이기 전에 삶의 스승"이라고 적었다. 1987년 MBC 입사 동기인 방송인 백지연은 "멋진 감독이었고 참 좋은 친구"라고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배우들이 하나같이 연기를 '인정받은' 경험부터 떠올렸다는 점은, 그의 현장이 배우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