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을 맞아 코요태 빽가에 이어 홍지민도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이 알려졌고, 부친 홍창식 선생은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인물이다. 홍지민은 훈장을 받는 과정에서야 아버지의 활동을 알았고, 배우 송혜교는 15년째 서경덕 교수와 해외 독립운동 사료를 알리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 사연들은 후손이 몰랐거나 앞세우지 않았던 독립운동의 기록이 어떻게 뒤늦게 확인되는지를 보여준다.
올해 광복절에는 연예인들이 가족의 독립운동 내력을 잇따라 공개했다. 코요태 빽가가 외증조부 진희창 선생이 독립운동가였다고 밝힌 데 이어, 배우 겸 가수 홍지민의 아버지가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독립운동가 홍창식 선생이라는 사실이 함께 알려졌다. 빽가의 사연은 이미 여러 매체가 다뤘으니, 덜 알려진 두 사람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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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민이 전한 아버지의 이력은 구체적이다. 홍창식 선생은 열여섯 살에 비밀결사대에 들어가 일본군 군수물자를 폭파하는 활동을 하다 동료들과 함께 체포됐다.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옥살이를 했고, 감옥 안에서 광복을 맞았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모습도 전해졌다. 뇌출혈로 한쪽 몸이 마비된 뒤에도, 기록을 남기지 못한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서류 작업을 계속했다고 한다. 홍지민이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별세했다. 그는 아버지가 참 자랑스럽다는 말로 이 사연을 전했다.
두 사람의 사연에는 공통점이 있다. 후손이 오랫동안 이를 앞세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홍지민은 아버지가 애족장을 받는 과정에서야 그 활동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밝혔다. 가족조차 정확한 내력을 몰랐던 것이다.
빽가는 반대로 알면서도 말을 아꼈다. 그는 외증조부의 업적에 얹혀 가는 느낌이 들까 봐 조심스러웠다며, 20년 넘게 함께한 멤버들에게도 밝힌 적이 없다고 했다. 진희창 선생은 백범일지 하권에 이름이 남아 있다. 김구 선생은 그 기록에서 "진희창 같은 가까운 동지들이 미운 밥을 주지 않고 나를 도왔다"고 적었다. 진희창 선생은 1933년 상하이에서 순국했고, 정부는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몰라서든 조심스러워서든, 이런 기록은 대개 세월이 지난 뒤에야 확인된다.
가족의 내력을 밝히는 것과 결이 다른 활동도 있다. 배우 송혜교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함께 15년째 해외에 흩어진 독립운동 사료를 알리는 일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미국 워싱턴DC 한인들의 독립운동 역사를 담은 한국어·영어 안내서 1만 부를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 기증했다.
두 사람이 그동안 안내서와 한글 간판, 독립운동가 부조를 기증한 해외 유적지는 40곳에 이른다. LA의 도산 안창호 하우스 안내서, 여성 독립운동가 박자혜를 조명한 작업도 여기에 포함된다. 자신의 뿌리가 아니라 흩어진 기록 자체를 알리는 쪽에 힘을 실은 경우다.
해외에 남은 유적과 사료는 국내 자료보다 관리가 어렵고, 한국어 안내가 없으면 현지에서도 지나치기 쉽다. 15년에 걸쳐 한 곳씩 안내서를 채워 넣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다. 한 해 반짝 관심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활동은 광복절 특집 이상의 무게를 가진다.
세 사람의 방식은 제각각이다. 몰랐다가 알게 된 홍지민, 알면서도 조심스러웠던 빽가, 남의 기록을 알려온 송혜교다. 공통점은 독립운동의 흔적이 후손의 침묵이나 무지 속에서도 결국 문서와 훈장, 유적으로 확인된다는 점이다. 광복절마다 이런 이야기가 새로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